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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7] 목회자 칼럼

  • Feb 27, 2024
  • 2 min read

“억측은 이제 그만!”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일보 종교인 칼럼을 쓰는 글이 너무나 귀한 글임에도 아마도 성도님들의 대부분이 읽지 않으셨을것 같아서 바로 엊그제 기재된 글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간추려서 목자실에서 나눕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무엇보다도 관계를 중요시 여깁니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고 무진장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때론 좋은 관계가 무너질때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억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단이 관계 파괴를 위해 사용하는 무기중에 하나가 바로 “억측”입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억측”은 “이유와 근거 없는 추측”입니다. 상대방이 “억측”을 부린다면 정말 답이 없고 환장할 노릇이 되는데 이유는 “억측”이 오해를 불러오기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억측”을 부리면 정말 곤란해 집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변명으로 들려질 것입니다. 오히려 설명을 하면 할수록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옵니다. 그러면 정말 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그리고 일단 그런 상태까지 가면 회복이 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정말 “억측’은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주범이라고 여겨집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심지어는 가정에서 관계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억측”을 멀리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본다면 “억측”을 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고 오해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볼 줄 아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한 성도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의 입장과 마음을 정말 모른는 것 같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목회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다 보니 정작 성도의 입장과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라는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오래전에 제가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에 평신도로서 섬기던 교회 담임 목사님이 제게 종종, “성도는 죽었다 깨나도 목사의 마음을 모른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실제로 제가 목사가 되어보니 그 말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도님의 말은 거꾸로 목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성도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정말 한 방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말 또한 사실인 것이 인정이 되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앞으로 성도의 입장에 서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볼 줄 아는 것은 나의 실력과 인격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한 가지 길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와 하나가 되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즉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에 모실때에 비로서 그 분의 사랑과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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