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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정재근 성도 이집트 단기 선교

Updated: Apr 17


























 

제일 먼저 이번 애굽 단기선교를 제 인생에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중보기도로 단기 선교에 동행하여주신 성도 여러분과 키맨으로 섬겨주신 김여진 간사님 그리고 선교 준비를 도와준 아내와 한국에서 오셔서 연말 연시를 아내와 브라이언과 함께 보내 주신 장모님께 먼저 감사를 표합니다


저희 팀은 남가주에서 자매 세 분과 버지니아 주에서 형제 한 분 그리고 샌프란에서 저, 이렇게 다섯이 팀을 이루어 이번 애굽 단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카이로에 도착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말씀 묵상과 예배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초 아랍어 회화와 복음 전파에 관한 이집트 아랍어를 배웠습니다. 때로는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배우며 현지 영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역은 점심 전 후에 시작해서 저녁 6시 내외로 마쳤습니다. 출발하기 전 선교사 선생님들이 미리 생각해 두셨던 곳으로 형제, 자매조를 나누어 지하철이나 마이크로 버스 또는 머슈루아로 불리는 미니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사역을 하였습니다. 자매조는 주로 주거지에 방문하여 현지 자매님들에게 마사지를 해주거나 여러가지 말로 친해지고 복음팔찌를 전하며 그리스도를 영접할 지 물어보고 원하면 영접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반면 형제조는 커피숍에서 현지 형제들과 교제하며 연락처를 받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카이로에서의 Christmas Party는 사역 넷째날인 12/23 금요일 오후 2시 반 부터 6시 반 정도까지 였습니다. 23일 당일 아침 손님을 더 초청하기 위해 숙소 주변을 네 명의 조원들과 걸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거닐다 마침 아침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콥틱 가정의 어머니와 Joy라는 딸을 만나 길에서 교제하다 집에 방문해도 된다고 허락해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희에게 식사를 차려주시고 잘 접대해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Joy의 오빠인 Etienne을 만나게 되었는데 영어를 잘해서 많은 대화가 이루어져서 그 가정과 더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족 식구들과 Joy의 친구까지 데려 오겠다고 하여 정말 기뻤습니다. 마침 저희가 그 집에서 교제하는 동안 밖에서는 비가 내렸습니다. 저희는 이 가정을 만나게 해 주시 고 비를 피하게 해 주신 성령님의 세심하신 손길을 느끼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렸습니다. 


딸 Joy가 친구들을 불러 party에 작년에 만났던 하산과 새로 알게된 그의 배우자, 장 단기 선교사님이 섬기는 영혼들 포함해서 20명 정도의 영혼을 초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티에서 영혼들이 처음 만났음에도 서로 축복하고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천국 잔치도 아마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파티를 통해서 자본주의 논리가 익숙한 저에게 처음 만난 외국인의 초대에 선뜻 응하는 애굽인들의 순수함과 자신의 집에 초대해 주는 착한 마음에 놀라고 저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기쁜 잔치에 누구 하나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무엇을 판다거나 남을 속인다면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선의의 다수의 사람들의 불신의 벽이 생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왜 천국에 들어가려면 아무리 착하더라도 주님을 주로 시인해야 하는지 깨달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 팀은 형제조와 자매조가 나누어서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의 2박 3일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선교사님이 알려주신 대로 카이로 외곽 지역에서 Port Said행 시외버스를 찾았는데 Port Said는 카이로의 다른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급하게 선교사님에게 연락을 드리니 바뀐 것 같다시면서 그럼 둘째 날 갈 도미어뜨 지역을 먼저 가라고 하셔서 차에 올랐습니다. 버스 비용이 두명 합해서 34기니였는데 잔돈이 없어 54기니를 내고 20기니를 돌려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버스비는 내리기 얼마 전에 승객들이 돈을 모아 내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20기니를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종점에서 내려서 물어보니 운전기사인 자신의 요금까지 내라며 바가지를 씌웠습니다. 저희는 몇 번 따지다가 아랍어도 짧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버스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택시를 탔는데 처음에 20기니라고 하다가 둘이니 40기니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선교사님께 물어보니 이 역시도 바가지였던 것 같았습니다. 숙소에서 내려서 짧게 영혼들과 교제하다보니 벌써 저녁 때가 되어 저희는 평소보다 말씀 묵상을 간단히 하고 일찍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다음 여정을 핑계로 대충 QT와 찬양을 하고 Port Said로 향하였습니다.


Port Said에서도 바가지 상술로 저희 조는 피곤하였고, 길을 물어보면 저희가 가는 곳까지 가주겠다고 하면서 나중에는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몇 기니의 적은 금액이지만 이런 지출은 사역중에 허락되지 않았고 저희도 기쁘지 않아서 거절하였습니다. 현지 형제들과 교제하기 위해 사람이 많은 커피숍을 돌아다녔는데 마침 비까지 내려 여러가지로 힘든 날이었습니다. 나이가 60에서 70정도의 할아버지들이 계셨는데 개인 승용차로 영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힘듦으로 그만 당일 선교활동을 끝내고 숙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에 보다 젊은 청년들이 있어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한번 교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조를 이루었던 형제님에게 같이 갈 것을 제안하고 그 테이블로 갔는데 동역하는 중 마음이 맞지 않아 제가 그만 중간에 중간에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저는 그 형제님께 제 마음을 말씀드렸는데 서로 서운한 마음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함께 선교여행을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저녁을 먹고 알렉산드리아로 장시간 여행을 같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서 지난 2박 3일간의 선교 내용을 보고하는 시간에 조의 불화를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기도제목으로 내 놓았습니다. 자매조와 알렉산드리아의 선교사님들은 조금 당황하셨지만 기도해 주셨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사역도 오전에는 말씀묵상과 예배와 찬양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점심 전후해서 사역을 하였는데 첫날에는 작년에 방문하였던 만다린 지역의 함함 식당을 재방문하였습니다. 저희와 교제 나눈 빌렐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 지역의 영혼들과 교제하며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다음 날은 세아라고 하는 지역에서 Ferrari rent car office 를 운영하는 하젬, 바셈, 그리고 마흐무드 삼형제와 교제하고 마흐무드가 집에 안내해주어 음료수를 대접받고 자매들은 어머니와 이모를 마사지하며 복음을 전하였고 형제조는 마흐무드와 교제하며 복음팔지를 전해주고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12월 29일 목요일 2시반 부터 6시반까지 지중해에 면한 글림베이 인근의 장소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였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초청한 19살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현지 자매분들이 6-7명 정도 참석하였고 빌렐 가정은 늦게 5시 정도에 참석하였는데 작년에 방문했던 빌렐과 빌렐의 누나와 조카, 어머니 그리고 같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60대의 아버지와 30대 초반의 딸 이렇게 6명 전체 12에서 15명 정도의 손님과 5명의 단기선교 참여자와 3명의 선교사님으로 20명 남짓 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저희는 천지현 팀장님이 주도해서 김밥과 떡볶이 그리고 딸기, 젤리등을 준비하여 영혼들과 교제하고 아랍어 찬양을 부르고 자기소개를 아랍어와 영어 한국어로 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이 초대한 한 젊은 현지 자매는 한국어 실력이 초급에서 중급사이라 두 문화 사이에 다리 역할을 아랍어를 잘 하시는 선교사님과 함께 해 주었습니다. 당일 아침 한 팀은 영혼들을 초대하고 동시에 음식을 준비하고 행사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섬기었습니다.


선교는 아침 6시 반에 기상해서 7시부터 8시까지 찬양과 말씀 묵상을 하였습니다. 8시-9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찬양과 예배와 기도를 9시 20분부터 11시 정도까지하며 실질적인 사역보다 저희는 예배, 기도, 말씀에 선교 일정에 반 가까이를 할애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속에 있는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팀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저희 밖에서 성령님이 모든 상황을 인도하시도록 집중하였습니다. 선교는 두 명 또는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선생님들의 아침 브리핑만 듣고 지극히 짧은 아랍어로 머슈루아라고 불리는 봉고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선교란 무엇인지를 배우고 현지 문화를 배우는 즐거움 또한 성령님이 채우셨습니다.


이번 선교를 통해서 느낀 것은 선교를 잘 하려면 상대 영혼은 우리가 일하는 것을 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가 급박한 일이지만 이런 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템포를 인도해 주시라고 성령님께 기도하고 영혼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몇 명에게 복음을 전했는가 하는 객관적인 성과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록 사역에 열매가 없을 지라도 내가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적인 또는 외적인 시련이 찾아왔을 때,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고 매일 코란을 암송하는 방송을 틀어대는 이 아랍 사회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성도를 키워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슬람이 지배하는 이집트이지만, 4명의 부인을 허락하고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이 이슬람이 거짓이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생명이고 진리이신 예수가 보혈을 흘리신 십자가의 도로 애굽 형제 자매가 하루 속히 돌아오길 바랍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크리스마티 이후에 Ferrari car rent를 재방문하였습니다, 지난 번 방문때 만났던 하젬과 바셈은 만날 수 있었지만 저희가 복음팔찌를 건냈던 마흐무드는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매들이 마사지를 해 드리며 복음을 전했던 두 어머니들 중 한 어머니는 출타 중이라 짧게 교제하고 빌렐 가족이 있는 함함 식당을 재방문하러 만다린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약속과 달리 빌렐이 나타나질 않아 저희쪽에서 팀장이 연락을 취했는데 늦게 저녁 8시 즈음에 도착한다하여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였고 저희 팀장님이 다음날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어 목감기가 걸리고 아팠습니다. 


다음 날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로 가는 길에 선교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중간에 있는 도시에서 1박2일 FO를 형제팀 자매팀으로 나누어서 하였습니다. 저희 형제조는 일마흐무데이야라고 하는 곳에서 1박을 하였습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가정집도 방문하고 공업소를 하는 여러 형제들을 만나며 교제하였습니다. 나이가 60대 쯤 되어보이는 형제에게 복음 팔지도 건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에 어긋났던 형제조의 팀워크를 저희가 솔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하고 기도를 요청했을때 성령님께서 회복 시키시는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알시에서 일마흐무데야로 오는데 숙소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5.5 기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일 마흐무드까지 13기니가 들어 전체 18.5 기니가 들었습니다. 1불에 25기니이니까 1불도 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정말 믿기힘들 정도로 싼 물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내를 머슈루아로 이동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 하나와 유치원 정도의 아들 하나 이렇게 두 아들을 데리고 탄 아주머니가 두 아이를 한 좌석에 앉혔는데, 아이들은 가는 동안 몇번 각자 자리를 차지했고 어머니는 무어라 이야기하며 다시 한 자리에 앉혔습니다. 저희 일행보다 먼저 내렸는데 어머니가 정색을 하며 두 아들을 30초 정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차비를 아끼기 위해 두 아들을 한 자리에 앉힌 것 같았습니다. 아마 1 기니를 그러니까 4센트를 아끼기 위해 사랑하는 자녀들의 불편을 감수하며 아끼는 삶을 보면서, 저 어머니는 미국에서는 길에 떨어진 페니는 잘 줍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일강 주변의 푸른 농장을 보면서 이 믿기 힘들 정도의 싼 물가를 보며 우리가 쫓는 세상 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내 주어진 삶에서 무엇을 쫓으며 살아야 하는 지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한데도 불구하고 매일 매순간 내가 어디에 있던 하나님은 최선의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아 영생할 기회는 단 한번 뿐이라는 가르침이 이해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일정 마지막 날 20대의 꽃다운 나이로 애굽에서 선교하시다 생을 마감하신 김노래 선교사님의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 곁에서 편히 쉬시며 즐거워하실 선교사님을 생각하며 육신의 삶이 끝나더라도 우리의 영혼 곧 생각하고 느끼는 감정은 계속된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기위해 그리고 증명하기 위해 수행을 하고 과학을 발전시켜 하나님을 찾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선교에서 영혼들과 또 동료 팀원들과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사진 속에서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을 찾으려는 시도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셨다는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이번 선교를 통해 더 뚜렷해졌습니다. 섬겨주신 선교사 선생님들과 팀 동료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이것들을 깨닫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모든 영광과 존귀를 아랍어 찬양으로 부르며 간증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후디카쿨랄 마그디 왈 카라마티

아르파'우 야다-야 나후와카 와 우삽비 후스마카

우후디카쿨랄 마그디 왈 카라마티

아르파'우 야다-야 나후와카 와 우삽비 후스마카

안타 아짐 레사 미쓸라카 야랍

타쓰나'울 '아가이바 타스나'울 '아가이바

안타 아짐 레사 미쓸라카 야랍

타쓰타띠'우 쿨라 샤이 타쓰타띠'우 쿨라 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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