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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5] 목회자 칼럼

Feb 17, 2024
2 min read

“연단의 축복!”


지난 주 설교가 끝나고 평상시 보다 많은 성도님들이 “오늘 목사님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해서 제가 기분이 상당이 좋았는데^^ 왜그랬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지난주 설교가 고난에 대한 설교이었고 말씀을 통해서 위로와 도전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 성도님들중에 고난과 환난 가운데 있는 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고난으로 인하여 주저 앉아서 포기하거나 또는 고난을 피해 도망가려하기 보다 고난을 뚫고 지나가는 믿음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뼈아픈 배려입니다. 좋을 예를 하나 들어드리면 제가 한번은 중국 북쪽에 있는 어느 시골에 선교를 갔는데 그 곳은 양을 치는 유목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전도 나갔다가 양무리 가운데 다리가 부러진 양을 보았고 궁금해서 그 양무리 주인에게 어떻게 된것인가 물어 보았더니 자신이 일부러 양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 목자가 하시는 말씀이… 양이 하도 울타리를 벗어나서 위험한 곳으로 가기에 어쩔수 없이 양의 다리를 부러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마디를 덧붙였는데… 그 양의 다리를 부러뜨릴때 목자인 당신의 마음이 더 아팠다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것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허락하실때 하나님은 더 마음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고난을 통한 연단을 통해 우리의 인격이 변화되고 더욱더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함을 가져오기에…


물론 어떤 분들은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회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어렸을때 무언가 잘못을 했다면 불러다가 회초리로 때리든 아니면 훈계를 하든지 해서 분명히 잘못한 것에 대한 징계를 받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벌을 내림으로 아이에게 단순히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할 때 반드시 남은 자 또는 그루터기를 남겨놓으셔서 꼭 회복을 경험하도록 배려 하셨습니다. 정말 징계의 목적이 벌이었다면 그냥 다 쓸어버리면 끝나는 것인데 징계를 내림으로 회개하고 반드시 회복을 경험할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과 회복을 마음에 새기셔서 고난이 찾아왔을때 절망이 아닌 소망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더욱 매달려서 반드시 회복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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