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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3] 목회자 칼럼

  • Mar 10, 2024
  • 2 min read

“제발 표현 좀 하세요...!”


여러분 혹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저는 전에 아는 한 분이 자신이 처해진 상황이 너무 힘들다 보니 신세 타령하듯이 이 말을 내 뱉는 것을 들었습니다. 연약한 사람이기에 소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상황이 오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욥기에 나오는 ‘욥’입니다. 욥이 천상의 회의 결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잃게 되고 마지막 남은 건강 마저 잃게 되자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흘러 나옵니다. 욥이 집요하게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것은 현실의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이며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욥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태어나게 하신 날을 저주할 수 있을까? 어떻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이 일어나는 분이 있으신가요? 만약에 그렇다면 저나 여러분이 욥의 상황이었다면 계속해서 찬양과 경배만 올렸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목회자인 저 또한 욥과 같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도라도 또는 목사라도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이 처해져 있는 참혹한 상황에 대한 탄식이지 불신앙은 아닙니다. 이는 불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꼭 붙들으려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고난을 만나서 힘들고 지칠때에, 고난이 길어져서 낙심이 찾아올 때에 욥이 한 것처럼 신뢰할 만한 영적 식구들에게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시길 바랍니다. 고난을 당하여 고통 가운데 있다면 입을 닫고 멍하니 있어서는 안됩니다. 입을 열어 말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슬픔을 표출해야 합니다. 오히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새기는 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옵니다. 감정을 절제해서 마음 깊은 곳에 꼭꼭 가두어두는 것은 치유와 회복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힘든 것을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우리 감정의 적나라하고도 솔직한 표현인 탄식과 슬픔은 때로 우리의 상한 심령을 정화시키는 활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자신의 처해진 극심한 고난으로 인한 괴로움을 영적 친구들에게 표현하면서 또한 솔직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랬을때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국은 믿음으로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부디 고난을 맞아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고난이 길어져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영적 식구들에게 표현하시고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의 소리를 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향한 첫 걸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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