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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3] 목회자 칼럼

  • Mar 2, 2024
  • 2 min read

“변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수행…”


이제 거의 판데믹 끝자락에 와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지난 2년간의 기간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그동안 판데믹으로 인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변동이 일어났는데 그에 따라서 그 어느때보다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변화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하고 살아남지 못하게 되듯이 같은 맥락에서 교회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변화는 필수 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변화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날아다니는 솔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솔개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솔개는 최고 약 70년의 수명을 누립니다. 그러나 약 40년이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되고,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며, 깃털도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무거워져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힘들어집니다. 바로 이때쯤에 솔개는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릴 것이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갱생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합니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져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납니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제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이렇게 하여 날개가 새롭게 나면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변화는 살아남기 위한 필수 사항입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변화되어야 하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변화되지 못하면 영적으로 볼때에 우리의 모습은 마치 죽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신앙생활에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것인가요? 신앙생활의 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과정이기에 고통스러운 수행(?)이 필요한데 바로 우리는 그것을 거룩한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삶 속에서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말씀과 기도 훈련입니다. 바쁜 생활 가운데 말씀과 기도의 거룩한 습관을 지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그리하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능력이 전혀 없기에... 오로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 충만함으로 인하여 변화가 가능하기에... 성령님의 절대적 임재와 인도하심으로 인하여 변화가 오는 것이기에! 그러므로 오늘도 나 자신의 변화와 신앙생활의 변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수행(?)을 포기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함으로 성령님을 통하여 새로운 심령으로 마치 새로운 날개를 얻은 솔개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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