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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1] 목회자 칼럼

  • Mar 31, 2024
  • 2 min read

“지금 부활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곳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장례식장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 나이 들어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은 그렇다 하더라도, 젊어서 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을 참석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여러번 장례식을 집례도 해보고 참석도 해보았지만 역시 가장 슬펐던 것은 몇 년 전에 젊은 나이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은 한 분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장례식장이 온통 유가족분들과 참석한 분들의 눈물 바다고 되었고 저도 너무 슬퍼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유가족 분들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조용히 집으로 온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가장 슬프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무기력합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리 주변에 또는 가족 중에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또 죽음이 얼마나 그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고 절망을 안겨주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라는 철학자이지 신학자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인간을 정의하기를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절망하고 있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은 자기라는 생명에 대한 사형선고라는 것입니다. 이런 죽음을 안고 있는 자가 절망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요? 키르케고르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절망의 반대는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다.” 신은 죽어 사라져 버려서 의미 없을 우리의 삶을 비로소 가치 있고 영원하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바로 우리 예수님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절대적 절망을 안겨주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어떻게요?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첫 열매가 됨으로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요 바로 우리의 믿음의 핵심입니다. 부활신앙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설령 예수님의 십자가가 소중해도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죽음은 단지 한 사람의 고상한 죽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기에 십자가가 십자가인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십자가의 죽음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부활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부활이 아니라 지금 부활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1:25-26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며 지금 부활을 믿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부디 아멘으로 화답하는 부활신앙을 통해 두려움과 절망을 극복하고 기쁨 가운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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