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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목회자 칼럼

  • May 5, 2024
  • 2 min read

“성경에서 만나는 난해한 구절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아주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구절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 해석을 하거나 오해를 해서 실망하게 되고 심지어는 신앙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난해한 구절을 만날때에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번 주 생명의 삶 본문인 열왕기상 12장 15절,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을 보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합니다.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분열 왕국의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들려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거듭된 불순종이 가져온 결과인 것입니다.


비슷한 또 다른 예로 이번 주에 성도님 한 분이 성경을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서 제게 질문을 해 오셨는데 그 구절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2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입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이 일부러 미혹의 역사를 보내서 거짓 것을 믿게 한 것처럼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멀쩡히 있는 사람에게 거짓 것을 믿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죄의 결과로서 12절,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을 보면 분명해 집니다. 그러니까 완강하게 고의적으로 반복적으로 진리를 거부하고 불의를 좋아하기에 거짓을 따라 가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구절들이 성경에 여러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말인 즉슨 하나님께서 멀쩡한 바로왕의 마음을 일부러 완악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왕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반복적으로 완악하게 먹으니까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해서 은 30냥에 팔아 넘긴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가롯 유다를 버리기로 작정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가롯 유다 스스로가 돈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을 팔아 먹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고 이것을 아는 예수님께서 여러번에 걸쳐서 그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시도하셨으나 그의 마음이 완강하게 거부하였던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말 중에 하나가 로마서 1장에 나오는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 악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여러 시도를 반복적으로 해도

끝까지 완강하게 거부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저는 이렇듯 난해한 구절들 속에서도 저주가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으로 속히 완강함을 버리고 회개하길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멘!


-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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